[ESG성패, 데이터에 달렸다] ESG 공시 `PR 아닌 IR`… 온난화·리스크 노출 데이터 중요해져
IIRC ‘IR 프레임워크’ 발표 등
재무·비재무 통합보고법 제시
기업 투자판단에 ESG 큰 영향
ESG 공개여부로 등급 달라져
위험도 데이터 관리 중요성 ↑
대형 건설사인 A사. 비상장사인 이 회사는 지난해 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보고서를 내면서 사회 공헌 활동을 유독 강조했다. 하천 청소,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운동, 연탄 배달, 그리고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까지…. 활동 횟수와 함께 보고서에 빼곡히 나열된 봉사 활동 내역을 보면 일견 대표이사부터 말단 직원까지 ‘ESG경영’으로 무장한 회사라는 느낌이 든다. 보고서 속 회사 비전, 경영이념 역시 ESG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그게 전부다. 사회공헌 활동이 곧 ESG의 요체라고 착각하는 듯하다. ESG 공시시대, 가장 중요한 도구로 여겨지는 숫자(데이터)는 경영실적과 사회공헌 활동 횟수 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ESG 조직도 홍보(PR)팀에 속해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비단 A사의 사례만은 아니다. 규모가 작은 기업은 물론, 일부 상장사에서 조차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IR영역으로 넘어온 ESG 데이터
◇ESG 공시, ‘빛 좋은 개살구’ 피하려면 PR 아닌 IR돼야
전문가들은 ESG가 자칫 기업 PR의 영역에 그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ESG 공시 역시 ‘생색내기’식이 아니라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IR 차원에서 검토돼야 한다는 목소리에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ESG는 여전히 기업의 환경 개선이나 사회적 책임 관련 성과를 홍보하는 방식에 그치고 있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14명의 국제지속가능성위원회(ISSB) 위원 중 한 명으로 선임된 백태영 ISSB 위원도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이 지난 7월 개최한 ESG 공시기준 관련 웨비나에서 이를 지적했다.
백 위원은 “아직도 전통적인 관점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고 환경 개선을 얼마나 했느냐에 대한 회사의 성과를 홍보하는 PR 행태로 ESG 보고서를 많이 쓰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ISSB 기준에 따른 ESG 공시는 PR이 아닌 IR”이라고 강조했다.
IR 프레임 워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경영의 성과를 공개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지속하라는 요구가 확대되면서 기업의 보고서들도 지속가능보고서와 같이 비재무적 요소를 중시하는 유형으로 변화해왔다.
재무보고서와 지속가능성보고서를 하나로 합친 형태의 통합보고 기반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기업은 통합보고서를 발간해 기업의 실적과 현황에 대한 재무적 성과는 물론 ESG 등 비재무적 성과를 효과적으로 관리해 임직원, 공급망, 지역사회, 입법기관, 규제당국, 정책 입안자 등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
통합보고위원회(IIRC, International Integrated Reporting Council)는 2013년 IR 프레임워크를 발표하고 통합보고 작성시 고려사항과 원칙 세부 지침, 방법 등을 제시했다. IIRC에 따르면 국제통합 보고는 ‘기업의 전략, 지배구조, 성과, 외부환경 등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식으로 기업의 단기, 중기, 장기 가치창출 과정에 기여하는지를 보여주는 축약된 커뮤니케이션’으로 정의된다.
글로벌 회계법인 KPMG인터내셔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글로벌 매출 250대 기업 중 76%가 사업보고서를 통해 재무 및 비재무정보를 통합 공시하고 있다. 비중 또한 점차 확대되고 있다. 다만 IR 프레임워크를 적용해 통합보고서를 발간하는 비율은 약 16% 수준에 그쳤다. 2020년 기준 국내 매출 100위 기업 중 79개사가 지속가능성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IR 프레임워크를 적용·준수하는 기업은 10개사 남짓이다.
하지만 속도가 더디다고 해서 사회적 책임투자라는 방향성 자체가 역행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 무디스, 모건스탠디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모닝스타 서스테이널리틱스 등은 글로벌에서 운용하는 2조7400억달러(한화 약 3650조원) 규모의 펀드에서 ESG 등급을 직·간접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박세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2006년 UN에서 ESG가 도입된 목적을 보면, ESG 투자는 책임있는 투자를 지향하며 사회에 무조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착한 기업을 발굴하는 것보다는 장기 수익성을 제고하고 위험을 낮추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기업의 비재무정보를 바탕으로 평가를 산정하고 등급이 높은 지수를 설정, 기초지수를 이기는 것이 결국 ESG 투자의 근간이라는 것이다.
그는 “대형 연기금의 책임투자활동 범위는 위탁운용사까지 확대된 지 오래”라면서 “이들은 위탁운용사 선정, 평가 시 투자자산군의 ESG 운용 상황을 보고 있으며, 위탁자산군에 대해서는 다양한 책임투자 활동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다만 현재까지는 ESG 리스크를 잘 관리하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컨트롤하는 기업보다는 많은 비재무 정보를 지속가능보고서에 공개하는 기업에 좋은 등급이 부여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박 연구원은 “기업의 ESG 정보를 공개하는 의지에 따라서 등급의 높낮이가 나뉘게 되니 여유가 있는 시총 상위 기업일수록 조직을 잘 갖추고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하면 상위등급을 부여 받는다”며 “이에 MSCI ESG 지수와 기초지수는 구성종목과 수익률이 비례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적 흐름은 계속 간다…답은 ‘데이터’에 있다
국내 기업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이종민 한국IR협의회 IR지원팀장은 “ESG가 투자 판단의 척도로 자리잡으면서 과거 PR 영역에만 치중돼 있던 ESG가 최근 2~3년 전부터 IR 영역으로 넘어오는 추세”라면서 “ESG 공시도 시기의 문제일뿐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미 코스피 기업 대부분은 이미 ESG본부와 IR팀이 상호유기적인 관계를 가져가고 있다”며 “ESG보고서에도 IR 관련 내용을 담고, 이를 다시 IR팀에 전달해 IR 영역에서도 ESG 정보가 활용되는 식”이라고 말했다. 공시 체계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지만, ESG가 기업 가치 상승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
MSCI 전세계국가지수(ACWI)·미국·유럽의 기후변화 지수가 모두 벤치마크를 웃도는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MSCI 기후변화 유니버스(편입 후보군)는 무기 제작 회사나 심각한 ESG 논란에 노출된 회사나 화석연료 기업 등을 제외한다.
국내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신한투자증권이 MSCI ESG 국내 유니버스에서 환경 내 12가지 테마 포트폴리오에 대한 사후검증을 시도한 결과 기후변화 점수가 높거나, 탄소배출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기업이 시장 대비 초과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정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2021년 6월 말부터 이달 21일까지 탄소배출과 기후변화 포트폴리오는 코스피 누적 수익률을 각각 15.05%포인트(p), 15.01%p씩 웃돌았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ESG 공시의 핵심은 ‘데이터’가 될 전망이다. 실제로 MSCI ESG 리서치는 기후변화에 대한 지역별 물리적 위험을 계량화해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나타나는 경제적 비용 예상 금액과 리스크 노출도를 백분위 점수로 제시하는 식이다. 이 연구원은 이어 “앞으로 ESG 공시 강화에 따라 기후변화에 대한 기업 리스크를 공시하는 것도 점차 중요해질 전망”이라며 “지구 온난화 가속화와 경제적 피해 규모의 급증에 따라 물리적 위험에 대한 데이터 관리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출처 : [ESG성패, 데이터에 달렸다] ESG 공시 `PR 아닌 IR`… 온난화·리스크 노출 데이터 중요해져 – 디지털타임스 (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