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콘서트] 웬만한 국내 전문가보다 현지 건달이 더 낫다
[비즈 콘서트] 웬만한 국내 전문가보다 현지 건달이 더 낫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파국’에도 불구하고, 중국 현지에서 꾸준히 잘 나가는 브랜드가 있다. LF(대표 오규식)의 감성 브랜드 헤지스(HAZZYS). 영어로 되어 있기에 ‘한국 브랜드’라는 인식은 없다. 속을 봐도 중국인이 직접 유통을 맡고 있다. 그러니 사드를 피해갈 수 있다. 사드 사태에 더욱 빛나는 브랜드가 됐다.
헤지즈는 중국 시장에 진출한 패션 브랜드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지난 2016년 말 기준 중국 내 소위 A급 헤지스 매장은 250여 곳에 달한다. 중국 주요 도시 고급 백화점들의 준 명품 매장 사이에는 어김없이 헤지스 매장이 있다.
2007년 헤지스가 중국에 발을 내디딘 시점을 전후로 많은 국내 패션 대기업들이 중화권에 진출했다. 그런데 좀처럼 성공했다는 사례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아예 짐을 싸서 국내로 리턴 한 기업들도 적지 않다. 헤지스와 이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직접 진출이냐 간접적으로 돌아가느냐’ 중국에 진출하는 브랜드들이 가장 먼저 부딪치는 고민이다. 한때 한국 기업들 사이에선 중국에 직접 진출하는 게 마치 자랑거리이자, 자신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필자 역시 지난 2004년, 엘지패션(지금의 LF) 첫 중국 진출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받고 똑같은 고민에 빠졌던 적이 있다. 다른 패션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직접 진출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라이선스 방식을 고집, 중국 기업에 로열티를 받는 형식으로 2007년 어렵사리 헤지스 브랜드의 중국 진출을 성사시켰다. 그 이야기를 해보자.
모험이었다. 도대체 어떤 중국 기업이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브랜드를 로열티까지 내고 들여와 운영하려 하겠는가? 막막함을 뒤로하고 이때 선택한 방법은 정공법이었다. 타이완, 홍콩, 베이징, 광저우 등에서 20여 년간 현지 중국인들을 상대로 비즈니스 경험을 쌓아온 터라 ‘소통’하나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내심 “누구의 도움도, 어떤 관시에 의존하지 말고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라는 다짐도 했다.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중국 상위 10개 패션기업에 일일이 연락하고 찾아갔다. 다행히 기업들의 회장이나 창업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예상과 달리, 문전박대는커녕 한국에서 온 무모한 우리를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맞이하는 이들도 많았다. 덕분에 이때 만들어진 관계로 중국 본토 패션 업계에서 꽤 유명한 한국인 인사가 되는 특혜(?)도 누릴 수 있었다.
수차례에 걸친 프레젠테이션과 본사 회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중국 원저우 대표 기업 중 한 곳인 바오시냐오(報喜鳥)그룹과 헤지스 브랜드 라이선스 형식의 총 대리점 계약을 맺었다. 원저우(溫州) 인들이 누구인가? 바로 중국의 유태인으로 불리는 장사의 신(神)이자, 현지 비즈니스 실정을 꿰뚫고 있는 ‘디터우셔(地頭蛇, 그 지역의 뱀, 지방 토박이 건달을 뜻함)’들이다.
한국 보다 비교조차 힘들게 큰 시장, 엄청난 유통 코스트, 한국인으로 구성된 운영인력의 부담, 무명에 가까운 브랜드 인지도, 중국 패션업계의 이너서클까지. 이 모든 걸 고려하면 사실상 직접 진출은 자살행위에 가까웠다. 또한 나중에 직접 진출을 하더라도 지금은 현지 실정이 밝은 파트너들을 통해 좀 더 배우고 하자는 심산이었다.
‘먼저 직접 진출을 택했던 경쟁사들의 대부분이 별다른 성과를 못 내고 시간과 비용을 허비했다. 당시 한국 패션 기업들은 “우리가 누군데, 중국 시장 별거 있겠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무늬만 그럴싸한 용(龍)들이었다.’
직접 진출이 잘못됐고, 우회 진출이 답이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헤지스가 중국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데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졌다.
하나는 무늬만 화려한 용(龍)보단 역시 현지를 잘 아는 디터우셔(地頭蛇, 그 지역의 뱀, 지방 토박이 건달을 뜻한)가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바오시냐오그룹은 헤지스 브랜드를 경영하면서 원저우 상인다운 뚝심과 전략을 끝까지 견지했다. 진출 초기 필자의 예상과 달리 자기들의 안방 원저우의 최고급 쇼핑몰 1층에 파격적으로 플래그 십을 오픈했다. 그리고 곧바로 난징의 고급 상권 덕기 광장, 상하이의 SOGO 백화점 등에 입점시켰다. 유럽의 유명 브랜드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자리에 모든 전략과 상술을 동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그들은 헤지스를 한국 브랜드라는데 가두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한국 브랜드들을 경쟁 상대로 보지 않고, 곧바로 세계 유수의 브랜드들과의 경쟁 체제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헤지스가 다른 한국 브랜드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었던 이유다. 현지에서 인지도가 약한 브랜드를 럭셔리 브랜드로 포지셔닝 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시장 장악력과 동물적인 감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신뢰 관계다.
당시 필자는 이중간첩의 역할을 자처했다. 소속은 한국 기업이었지만, 오히려 중국 파트너의 입장을 대변하고, 그들의 편에 서있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서였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중간 소통 역할을 부단히 해나갔고, 그 결과 서로 상대방의 성공을 위해 무엇을 더 해 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고 자부한다. 또한 이런 이중간첩 생활에는 중국에 오래 살면서 쌓여온 소통의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이때 쌓인 신뢰 관계로 인해 양사 간의 협력은 지금까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자체적으로 운영되던 아웃도어 브랜드 라푸마도 바오시냐오 그룹과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중국 비즈니스가 올바른 의미의 꽌시로 시작해서 꽌시로 끝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 같은 헤지스 때부터 맺어진 라오 꽌시가 경쟁사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험난한 시장 환경에서 협력 관계를 늘려갈 수 있었던 것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디터 우셔 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격언 중에 “친구가 한 명 생기면 길이 하나 더 늘어난다(多一个朋友多一条路)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현지에 제대로 된 파트너만 만날 수 있다면 “한 명의 좋은 친구가 생기면 수많은 길들이 열릴 수 있다(有一个好朋友多几条路)가 가능해질 것이다.
글= 지성언 차이나탄 센터장
편집= 차이나랩
http://blog.naver.com/china_lab/220975521872